FRAUD LAWYER
Lawyer Column

변호사 칼럼

2023-05-01

변호사로서 서면을 쓴다는 것의 무게

전혀 모르는 변호사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유사한 판례를 찾다 보니 필자가 승소한 사건이 있는데, 자기가 볼 때는 어떻게 승소했는지 이해가 안 되어 직접 물어보려 전화했다는 것이다. 몇 년 지난 사건이라 필자도 구체적인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 제대로 답해드리지 못했다(분명 소 뒷걸음 하다 쥐 잡은 경우였을 것이다). 판결문에 담당변호사도 표시된다는 당연한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다가, 모르는 변호사님한테 전화를 받으니 나쁜 짓 하다 걸린 사람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



어느 회사 법무실로부터 연락이 왔다. 다른 법무법인에서 작성한 법률의견서를 받았는데 내용이 타당한지 다시 검토해달라는 부탁이다. 다른 법무법인에 먼저 일을 맡겼다는 점에 일단 기분이 상하여, 최대한 비판적 시각으로 의견서를 읽어보았다. 의견서를 실제 작성한 사람은 필자도 아는 변호사였고, 어느 법조문의 해석에 관한 쟁점에서 일본 판례까지 언급될 만큼 내용이 충실하고 논리적이었다.



비판적 시각으로 검토해봐도 흠잡기 어려웠으나 약간은 의구심이 들었다. 내가 아는 한 일본어를 할 줄 아는 변호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해당 법조문에 관한 자료를 더 찾다 보니, 그 의견서와 똑같은 내용이 담긴 주석서를 찾았다. 주석서의 각주에 언급된 일본 판례가 의견서에는 본문에 언급되었다는 차이만 있을 뿐, 목차부터 토씨까지 하나도 다른 것이 없었다. 고자질 같아 주석서를 그대로 옮겼다는 말 대신 이견 없다고만 회신하였으나, 그 변호사에 대한 인상은 매우 안 좋게 남았다.



생각해보면 법조실무에서 작성되는 거의 모든 서면은 작성자의 실명이 남는다. 판결서에는 판사가, 공소장에는 검사가, 준비서면에는 변호사의 이름이 표시된다. 위 사례와 같이 고객에게 발급해준 법률의견서가 다른 변호사로부터 재검토 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렇다면 필자가 여태 작성했던 준비서면이나 법률의견서를 보고 한심하게 생각했던 판사와 검사, 변호사 그리고 의뢰인은 대체 얼마나 될 것인가. 갑자기 오싹한 기분이 든다.



바쁜 와중에 자주 잊어버리고 살지만, 이른바 '유통가능성'을 생각한다면 내 이름이 남는 서면의 부담은 남다를 수 밖에 없다. 그 중압감을 이겨내고 유통과정에서 사장(死藏)당하지 않을 서면을 남기려 애쓰는 모든 법률가들에게 경의와 성원을 보낸다.


List